창원 장애인 복지센터 ‘희망이룸’에 다니는 발달장애인 5명이 지난 23일 발표된 요양보호사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인공은 최충만(33), 임수환(25), 장은수(25), 박준우(23), 도화진(27) 씨다. 삶의 대부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동정과 시혜 대상으로 여겨지던 이들이지만, 아픈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됐다.
이들은 지금까지 받은 돌봄을 갚고자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몸이 불편한 친할머니를 돕고자 시험에 응시한 이도 있었고, 수십 년 뒤 노인이 될 자기 부모를 돌보려고 자격증을 딴 이도 있었다.
준비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현행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려면 총 240시간(이론 80시간·실습 80시간·실기 80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후 시험에서 100점 만점 기준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이다. 비장애인은 합격까지 걸리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한 달이다. 반면 이들은 6개월 동안 공부했다. 어려운 한자어와 낯선 의학 용어를 이해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책에 나온 용어 설명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교육을 도운 사회복지사들은 여러 시도 끝에 어려운 용어는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심폐소생술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실제로 관련 내용을 몸으로 따라하며 배웠다. 시간이 걸리는 교육이었지만, 효과적이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는 문제만 봐도 답이 바로 나오는 수준까지 내용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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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발달장애인 도화진, 박준우, 장은수, 임수환, 최충만 씨가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6개월간 자격증 공부를 한 이들은 지난 23일 요양보호사가 됐다. /황선민 인턴기자 hsm@idomin.com
아픈 할머니를 간호하려고 요양보호사 시험에 응시한 박준우 씨는 “한자어가 너무 많아서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 또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중간에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그림 설명을 보거나 복지사 선생님과 같이 해보면서 익혔다”고 말했다.
교육을 도와준 유세진 희망이룸 사회복지팀장은 “한자어가 많다 보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했다”며 “차근차근 같이 교육한다는 마음으로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몸으로 익히게 했더니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고 전했다.
공부 과정에서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시험 당일도 고민이었다. 총 80문제를 1시간 30분 안에 풀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시험장에서 압박감을 견디며 끝까지 앉아 있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문제를 다 풀고 OMR카드에 답을 옮겨 쓰는 일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장은수 씨는 “자신 있게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갑자기 엄청 긴장됐다”며 “OMR카드 쓸 때도 손이 너무 떨렸고 혹시나 실수할까 봐 걱정됐다”고 시험장에서 느낀 감정을 말했다.
유 팀장은 “실제로 OMR카드를 밀려 쓰거나 잘못 표시하는 바람에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특히 신경썼다”며 “시험 3주 전부터는 실전처럼 OMR카드 쓰기 연습도 했었다”고 전했다.
수개월간 공부한 끝에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예상치 못한 반응도 있었다. 주변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이 쉬워서 합격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유 팀장은 “단순히 요양보호사 시험이 쉬워서 아이들이 합격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라며 “한 명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공부했고, 나중에는 아이들이 더 열정적으로 물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시험 합격으로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또 다른 자격증에 도전할 예정이다. 박준우 씨는 벌써 컴퓨터활용능력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장은수, 최충만 씨도 컴퓨터 관련 자격증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도화진 씨는 제과제빵사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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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 기자
/박신 기자